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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7. 17世 〉14. <부정공>성균생원공휘숭하가장(成均生員公諱崇夏家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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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정공>사복시정공휘정직가장(司僕寺正公諱廷直家狀)
司僕寺正公諱廷直家狀 噫吾先玉川人始著於麗中葉祖檢校侍中璋四世至諱元吉受封玉川君號農隱諡忠獻傳子諱瑜號虔谷官副正兩世勳業節義之安宗社扶民彛炳炳烺烺爲日星於東方天壤入 本朝族以褒之祠以享之後有井邑縣監諱智崑泰仁縣監諱大承訓練奉事諱珏俱以德政名敎見著於朝野公私之傳者不一而足公即奉事府君六世孫諱廷直字君甫考曰新命妣豊壤趙氏通德郞尙誼女生于 正廟丁酉十二月十二日氣宇俊爽德性寬厚事親志體備養多人難能處家雍睦交人誠信凡措事重然諾盡忠謀服田力穡田廬産業潤前澤后雅善餉客嘉賓滿座癖於攻駒良鬣充厩貯經史課兒孫自成義方散施有道族婣故舊貧不能婚葬者多經理焉遠近親疎恩義欵治遭外內艱克盡哀禮附身附棺期欲無憾每忌日致如在之誠至老猶不懈卒于壬子二月十三日享年七十六墓本面蘆洞山開金洞甲坐以曾孫春根貴追榮 贈通訓大夫司僕寺正配順昌薛氏世曼女生先公三年乙未卒亦前公六年丁未壽七十三墓蘆洞山先塋下巽坐 贈淑人擧四男贄祥 贈承旨奭祥台祥珍祥永舜永華永弘永權 贈戶參長房出永才永琦二房出永八永一三房出永律參奉永善永珪四房出曾孫及外孫甚繁昌未盡錄嗚呼炳寬念昔侍先祖曰家中故實承咡詔者多矣每擧公孝敬勤儉宜家保族以勵家少輩故奉以書紳不敢失墜近老副正先祖靖獻齋重修遺蹟則補財董役公其一也因此以見平日善繼之一端顧此不肖於親親賢賢豈可無秉彛之感哉玄孫炳箕欲圖闡幽俾余叙次謹撮家牒所傳與昔侍所聞望僭書此以資異時狀行之本立言君子知有所采擇矣 從玄孫 炳寬 謹撰 사복시정공휘정직가장(司僕寺正公諱廷直家狀) 아! 우리 선대는 옥천인으로 고려 중엽 검교시중(檢校侍中) 장(璋)에서 비로서 나타나 四세에 이르러 휘 원길(元吉)은 옥천군의 봉작을 받았고, 호는 농은이요, 시호는 충헌이며 아들 휘 유(瑜)는 호가 건곡이요, 벼슬은 부정이며 양대 훈업과 절의가 나라를 편안히하고 백성의 벼리를 바로잡아 밝게 빛나 동방 천지의 해와 별이 되었다. 이조에 와서 정문을 지어 포양하고 사우에 배항되었으며, 뒤에 정읍현감 휘 지곤(智崑) 태인현감 휘 대승(大承), 훈련원 봉사 휘 각(珏)이 함께 덕정명교(德政名敎)로써 세상에 나타나 공사간에 전한 것이 많았다. 공은 곧 봉사 부군의 六세손으로 휘는 정직(廷直)이요, 자는 군보(君甫)며, 고는 신명(新命)이고, 비는 풍양조씨 통덕랑 상의(尙誼)의 딸이었다. 정조(正祖) 정유년(一七七七) 十二월 十二일에 태어났는데 기질과 체구가 장대하고 명쾌하였으며, 덕성이 두텁고 너그러워 어버이를 섬기며 뜻과 몸을 갖추어 봉양하여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많이 하였다. 집안을 화목하게 다스리고 사람을 지성과 믿음으로 사귀며, 일을 처리하면서 승낙을 무겁게 하고 정직하게 주선하며 밭을 갈고 농사지으니 집이 윤택하고 산업이 풍부해졌다. 관후에게 손님을 잘 대접하니 귀한 손님이 자리에 가득하고, 지나치게 말먹이기를 좋아하여 좋은 말이 마구에 가득찼으미, 서책을 저장하여 아손을 가르치고 흩어서 베풀어주는 도리가 있어 족내와 친척 및 친구중에 가난하여 혼인이나 장사를 지내지 못하는 자를 많이 도와주니 원근 친소에 은의가 널리 미치었다. 부모님 상사를 당하여 능히 슬픔과 예를 다하며, 몸을 부여잡고 널에 붙어 여감없이하고 매양 제삿날에 계신 것 같이 정성을 다하기를 늙도록 게을리하지 않았다. 임자년 二월 十三일에 향년 七十六세로 별세하니, 본면 노동산(蘆洞山) 개금동(開金洞) 갑좌(甲坐)에 안장하고 증손 춘근(春根)의 영귀로써 통훈대부 사복시정을 추증하였다. 배는 순창설씨 세만(世曼)의 딸로 공보다 三년 먼저 을미년에 태어나 공보다 六년 먼저 정미년에 별세하니 춘추는 七十三세요, 묘소는 노동산 선영 아래 손좌(巽坐)며 증 숙인(贈淑人)이었다. 남 지상(贄祥)은 증 승지요, 석상(奭祥)·태상(台祥)·진상(珍祥)이며, 영순(永舜)·영화(永華)·영홍(永弘)·영권(永權) 증 호조참판은 장방출이요, 영재(永才)·영기(永琦)는 二방출이며, 영팔(永八)·영일(永一)은 三방출이고, 영률(永律), 참봉 영선(永善)·영규(永珪)는 四방출이며, 증손 및 외손은 매우 번창하였으므로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 병관(炳寬)이 생각하건대 옛적에 선조를 모신 날에 집안 고사(故事)에 대하여 입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이 많았는데 매양 공의 효도하고 공경하며, 근검하여 집을 편안히 하고 겨레를 안보함을 들어 집안의 젊은 사람들을 격려한 고로 받들어 큰 띠에 써서 감히 그 뜻을 잃지 않았다. 근자에 부정 선조 재실 정헌재 중수 유적을 상고한즉 재전을 보조하고 역사를 감동한 것이 공이 제일이라. 이로 말미암아 평일 착실히 이은 일단을 보겠으니, 돌아보건대 이 불초가 어버이를 어버이로 어진이를 어진이로 어찌 가히 떳떳한 것을 잡을 감상이 없겠는가, 현손 병기(炳箕)가 그윽한 것을 천양하고자 나로 하여금 차서대로 기술하라 하므로 삼가 가보에 전한 바와 옛적에 모시고 들은 바를 참고로 참월함을 잇고 이와같이 써 다른 때 장행의 근본을 삼아 입언 군자의 채택할 바 있음을 알게한다. 종현손(從玄孫) 병관(炳寬)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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